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반응형
반응형


이제는 아득해져버린 한때진정한 사랑만큼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적이 내게도 있었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사랑뿐일 것이라고난 꼭 그 사랑을 만나게 될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는 했다.

지금의 나는 영원한 사랑을 믿지도바라지도 않는다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아무리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동화와 영화는 늘 우리에게 이별을 누락시킨 사랑의 단면만을 그 전체인 마냥 보여주지만사랑은 반드시 이별을 수반한다.
그것이 나의 생이 혹은 당신의 생이 다하여서이든우리 사랑의 생이 다하여서이든.
그러나 우리는 전자를 몸의 이별이라 부를 뿐사랑의 종결로까지 생각지 않는다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의 삶은 마지막 장면에 영원히 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고그리하여 오로지 죽음만이 우리의 사랑을 이별로부터 결백을 지켜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원한 사랑이란 그저 사랑이 끝나기 전에 우리 생의 끝이 먼저 당도한 것그뿐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게 꽃을 선물해 준 연인인 보라색 장미는 이러한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의 연애사를 듣고서는 내가 늘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져 온 것 같다며자신에게도 똑같이 찾아 올 나와의 이별을 늘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맞아우린 당장 내일 헤어질 수도 있어그게 우리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해서일 수도 있고그저 마음이 식어서일 수도 있고새로운 남자가 사귀고 싶어졌다거나지금의 연애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어그리고 그건 내가 아니라 형일 수도 있고."
  
난 담담하게 그의 불안에 대답했다난 그의 불안을 종식시킬 수도 없었고종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그 모든 것은 사실이었고난 그게 결코 잘못됐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 네 말이 맞아네 말처럼 나도 그럴 수는 있지만난 네가 진짜 그렇게 날 떠날 것 같아서 두려워." 

그는 자신도 그럴 수 있단 사실을 인정했지만내게 있었던 수많은 이별의 이유와 자신 사이의 공통점을 들어 자신과도 그러한 이유로 헤어질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내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을게그건 사실이 아니니까다만 난 오늘 형과 연인이라서 행복했어다른 사람이 아닌 형이 내 애인이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가 더없이 행복할 수 있었어그러니까 내일도 잘 부탁할게?"
  
적어도 연애에서만큼은나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오늘이었다.
나는 그저 그와의 어제가 행복해서 오늘도 그와 연인이었던 것뿐이고오늘도 그와 행복했으니 다만 내일도 그가 내 연인으로 있어주길 기대할 따름이다.
더 이상 오늘이 행복하게 느껴지지도 내일이 기대되지도 않을 그날까지난 그를 사랑할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인생에서 같음이 없다.’는 말로어제와 오늘오늘과 내일이 다르다는 말이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기에 오늘의 사랑이 내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아무도 확답해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하고답해야 한다'꼭 영원한 것만이 진실 된 것일까?'
글쎄오히려 홀로 영원해 보이려 하는 것들은 영원한 척 타인을 기만하려 드는 거짓된 것들이 아닐까 나는 의심이 든다마치 그가 선물해준 조화마냥.

진짜 생화라면 시들 수밖에 없듯이변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숱한 이별 속에서 내 사랑은 모두 끝이 났지만그것들은 진실이었고내 인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값진 순간들이었다.
영원한 것만을 찾아 헤맬 때영원치 못했던 것들은 머물 곳을 잃는다.



연애는 끝이 났다고 하여 실패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연애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기에연애의 흥망성쇠 또한 오로지 그 과정 속의 행복에 달려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주었고그이에게 사랑을 받았고그걸로 충분히 행복했다면연애의 존속 여부나 기간 따위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그 연애는 성공한 것이다.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청춘나의 생이 사랑으로 충만했으니.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이 떠나갈 때는 배신감이 남지만언젠가 떠나갈 줄 알았던 것이 실로 떠나갈 때는 아쉬움뿐이 남지 않는다사람도사랑도 마찬가지.

그리하여 나는 아쉬움을 최소화하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매순간에 찾아드는 내 진심을 외면하지 않고최대한 충실하려는 것으로그것이 사랑이든이별이든.
  
  
  
To. 보라색 장미
보라색 장미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과 불완전한 사랑.
사랑은 끝이 나고 불완전함만이 영원하다는 뜻일까혹은 사랑은 영원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까?
소나기에서 보라색이 좋다던 소녀의 말이 죽음의 복선이라고들 배웠지.
내게 선물해준 꽃도 어쩌면 우리 사이의 복선스포일러였을까?
그건 아닐 거야인물이 숨을 쉬고잠을 자는 당연한 사실에 복선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당연한 헤어짐에도 복선은 필요치 않으니.
보라색이 짙어져 자주색이 될 때 비로소 영원한 사랑으로 물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봤어.
그 자주색은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멍일 거라고.
너의 마음에 내가 새겨준 멍은 얼마나 아팠을까?
너의 마음을 충분히 자주색으로 물들여 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나에 대한 기억만큼은 네게 죽음이 방문할 때까지 너와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렇게 된다면그래그것이 영원이지.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